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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기/음악 즐기기

퀸 만의 이야기, 오직 퀸 만의 길...[1부]

우리가 흔히 레전드라 불러왔던 퀸 이라는 밴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퀸은 도대체 어떤 밴드인지 알고 가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퀸의 전신의 밴드, 브라이언과 로저가 있던 " 스마일 " 이라는 밴드이다.


 퀸의 전신격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일은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팀 스타펠으로 구성된 작은 밴드 였다.

이 밴드에 흥미가 있던 프레디 머큐리가 충고를 해주거나 공연을 자주 관람을 했고 이후 스마일이 해체 되면서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로 이루어진 밴드를 구성하였다. 여기서 베이시스트가 필요해져 오디션을 통해 존 디콘을 영입하였다. 1970년 네명의 맴버 모두가 모이면서 완전체 퀸이 시작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퀸이 1집 음반을 내기 전 얼마간은 '스마일'로 활동하고 다녔다는 점이다.




그들의 시작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맴버 각각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하고 넘어가자




 프레디의 소개에서 타칭중심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프레디의 표현을 빌려 말한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 내가 밴드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나는 밴드의 중심이 아닌 일원일 뿐이다, 나혼자 였더라면 이만큼 하지 못했을것이다. " 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의 양성애적 성향은 어릴적 혼자 유학길에 나서 기숙사 생활에 힘겹게 적응해나간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그는 무대위에선 거만한 락스타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일상에서는 아주 평범한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또 평범하길 바랬다.

  

 브라이언 메이는 천재적인 두뇌와 그의 침착한 성격덕에 그의 상징인 ' 레드 스페셜을 ' 아버지와 같이 만들어 낼수 있었다. 브라이언 메이가 어떤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 앉은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12시간동안 작업에 몰두했다는 일화가 남을 만큼 끈질긴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로저 테일러는 그냥 상남자 스타일이다. 언론과 가장 잦은 마찰을 빚은 멤버 이기도 하고, 시원시원한 의리파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어릴적 기타를 조금 쳤었다고 하는데 잘 맞지않아 드럼으로 전향했다고 한다.


 존디콘은 가장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퀸 팬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멤버 인것 같다. 디콘은 밴드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주 했다고 한다. 중요한 계약같은것에 있어서 디콘을 거쳐야만 성사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을정도니 말이다. 또 위에서 누구도 멈출수 없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릴수 없다고 해서 한번 붙여봤다. 프레디 사후 그는 ' 프레디 머큐리가 없는 퀸은 퀸이 아니다' 라고 퀸에서 탈퇴했지만 최근 브라이언 메이가 트위터를 통해 존디콘은 잘지내며, 사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라며 근황을 전한것으로 보아 팀내 불화로 존디콘이 나간것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사실 속사성을 확실히 파악하진 못하지만, 서로 얼굴만 봐도 으르렁거리고 큰 싸움으로 해체되는 밴드들 보다 이들의 사이가 끈끈한 사이임은 틀림없다. 


 퀸의 전성기 시절 맴버들의 사이는 좋았다. 프레디와 로저테일러는 자주 서로 장난 치고, 또 자주 싸웠다. 그러나 금방금방 풀렸던것으로 봐선 싸움덕에 사이가 좋았던듯 싶다. 여담이지만 로저는 메이와도 티격태격 했다. 프레디와 메이도 자주 티격태격했지만 얘들처럼 치고 받는일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로저와 메이는 주먹다짐을 한적이 있었다고 알려진다. 이정도면 로저가 싸움꾼 수준이다. 로저테일러의 성격에 대한 일화로 프레디가 에이즈로 고통스러워 할때 로저는 프레디에 대한 주변의 물음에 일관되게 " 엿먹어라 니들이 알게뭐냐 " 라고 강하게 밀어붙인 일화에서 알 수있다. 서로 20년 동안 함께 한 만큼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잠시 넘어가자면 밴드 초기에는 프레디와 브라이언이 대부분의 작곡을 맡았다면 중기에 갈수록 로저와 디콘이 작곡한 곡이 많아지다가 후기에는 균형을 이룬다. 서로 음악성향이 많이 달랐고, 거기서 벌어지는 싸움은 밴드의 원동력이자, 퀸의 완성이라는 표현이 맞는것 같다. 4명의 다른 음악의 지향점이 서로 상충하면서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원리인 것 같다.  프레디는 이런 싸움에 대해 "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성격 더러운 밴드일것이다 " 라고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싸움의 완성이 음악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밴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 아래의 자료를 보면



 황당한 기록도 몇가지 있지만 분명 퀸이 이뤄낸 업적은 굉장히 대단한것임은 틀림없다. 

 

 아래는 수상기록 이다.



 


 퀸은 변화 했다. 아주 많은 것을 바꿔서 등장했다. 70년대 초기의 모습과 80년대 후기의 모습을 비교하면 전혀 다른 사람들 같이 변화 했다. 프레디의 성적 정체성을 변화의 요인으로 많이 꼽지만 그것은 부가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80년대는 70년대의 음악시장과는 달랐고,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 또한 많은것이 변했다. 그 변화에 맞춰 퀸이 변화했다고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 하지만 퀸의 팬들은 그러한 변화 초기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 한번은 콘서트중에 관중이 면도기를 무대에 던지며 면도를 하라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물론 프레디는 프레디 답게 닥치라고 응수해서 단순한 해프닝에 그쳤지만 말이다. 

 

 그들의 음악적 성향 또한 겉모습과 같이 변하였다. 대부분의 밴드가 그렇듯 퀸의 초기에 보이던 실험적인 형태의 곡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다가 중반에 가면서 상업성을 고려한, 유행에 맞는 음악이 분위기를 주도 했고, 후기에 가면서는 퀸의 색이 완전히 드러나는 어떤 유행에 치우치지 않고 이것이 퀸 이다 라고 할 수있는 곡들이 등장했다.


 

 퀸에게서 라이브를 빼면 콘서트를 뺀다면 시체라고 극단적으로 표현 할 수 있다. 앨범에서 보여주는 하늘을 찌르는듯한 프레디의 고음은 자주 들을 순 없지만, 앨범에서는 만날수 없는 프레디 머큐리의 퍼포먼스와 퀸 만의 무대매너로 관객을 휘어 잡았다. 특히 프레디는 정말 순수한 열정으로 콘서트에서 관객을 위해 모든것을 쏟아냈다. 프레디 머큐리는 이런말을 남겼다. " 사람들이 퀸의 공연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한껏 흥에 겨워 돌아가면 좋겠다. 좋은 영화를 보러가는것 처럼 순수한 현실 도피가 되었으면 한다..." 라고 말이다. 또한 그들은 무대 조명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Crown 이라고 하는 대형조명만 트럭 8대 정도의 장비가 콘서트 마다 늘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 정도 규모에서 매직투어는 거의 배가 넘게 장비가 늘어났으니 투어에 대한 열정과 콘서트에 대한 열정에 대해 할 말은 다한거다.

 

 퀸의 마지막 투어인 매직투어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지만 잠깐 설명하자면 퀸은 프레디의 목상태를 고려해 최대한 큰 장소에서 많은 관객을 만날수 있도록 투어규모를 크게 잡았다. 이때까지 퀸이 쇼의 개념으로 투어를 돌았다면 매직투어에서는 퀸의 모든것을 보여주기위한 소통의 용도로 콘서트를 이용한것이다. 사실 수익의 의미로 콘서트를 진행한다고 생각할수 있지만 남는 수익은 있거나 없는 수준에 밖에 머무르지 않았다고 한다. 유럽투어중 몇개 공연은 공연수익이 Save The Children 기금에 모금되었다.


아래부터는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퀸의 라이브 콘서트를 선택해봤다. 시대 순서별로 정리해 놓았다.


 

 보울 콘서트는 Play the game 앨범의 투어로 1982년 공연 되었다. 이 콘서트 시판된 어떤 콘서트 보다 프레디의 공격적인 보컬 그리고 팬들의 호응이 아주 잘 어우러진 콘서트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퀸은 80년대를 기준으로 음악스타일이 급변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70년대의 기교와 80년대의 파워를 모두 가지고 있는 프레디의 보컬을 들을수 있는 공연인것 같다.




 아프리카의 난민을 구호하고자 개최된 세계 최대의 공연인 Live aid는 영국과 미국 그리고 시드니와 모스크바에서 동시 공연 했다. 여기에서 퀸은 자신들이 ' 살아있음 '을 세계에 알렸다. 공연의 기획자인 밥 겔도프와 엘튼 존은 " 그들이 쇼를 훔쳤다" 라고 말을 남길 정도 였다. 


 Live aid에서 그들은 최대 히트곡인 Bo Rhap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곡 Radio gaga에서는 그들의 전매특허인 Gaga 박수를 청중들에 이끌어 냈고, Hammer to fall 과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We will rock you 로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We are the champion 으로 관중을 물결치도록 만들었다. 이후 저녁공연에 그들의 정규앨범, The Work 앨범에 실렸던 인류애의 호소하는 노래 Is this the world we created? 로 마무리 지으며 Live aid의 취지와 딱맞는 선곡으로 청중에 감동을 선사했다. 


 Live Aid 공연이 발판이 되어 그들은 다시 한데 뭉쳐 신보 A kind of magic을 냈다. Live Aid는 그들의 제2의 전성기, 그리고 최대 규모의 투어 또 마지막 투어인 Magic 투어의 시작이라고 볼수있다.




 웸블리 콘서트는 1986년 A kind of magic (하이랜더의 OST 앨범 이기도 한) 앨범의 투어의 콘서트 중 하나이다. 퀸팬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콘서트 일것이다. 퀸 골수팬이 아닌 퀸에 잠시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고는 콘서트 일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시판된 콘서트 중에서 개인적으로 라이브를 믹싱해놓은 것으로는 이 콘서트 앨범이 가장 퀸의 라이브 답게 표현한것 같다.




 

 네브워스 콘서트 또한 Magic 투어의 공연중 하나이다. 투어의 콘서트중 네브워스는 퀸의 기념비적 콘서트로 남는데, 바로 퀸의 마지막 콘서트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공연이 녹음은 되었으나 녹화된 테이프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의 현장스텝의 실수로 아얘 녹음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퀸 역사상 가장 황당한 실수가 벌어졌다' 라고 브라이언메이가 표현할 정도이다. 그래서 관중이 녹화한 전광판 영상이 전부다. 대단한건 2시간동안 카메라를 들고 촬영했다는것이다.


 퀸이 공연의 대명사로 남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 공연들이 빠지면 섭섭하다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퀸이 이미지를 바꾼후의 그러니까 후반기의 공연들로 추천한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도 반영이 됐음을 이해바란다... 전반기의 공연은 아무래도 프레디의 힘?이 안느껴진달까... 하지만 전반기는 기교나 입이 떡 벌어지는 고음을 들을수 있어 만약 전반기 공연에 흥미가 생긴다면 반드시 추가적으로 포스팅 할것이다.




2부에서 계속